10-08
어느덧 추석도 지나고 일기도 바뀌어 밤에는 제법 견딜만합니다.
일교차가 큰 만큼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세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우리에게는 귀한 변곡점이기에 글 한 꼭지 올립니다.
[청암 박태준과 장경순장군의 충정]
여상환
청암은 포항제철 창업자이며 무에서 포철을 일구었던 박태준 포철회장의 아호다. 장경순장군은 알다시피 5.16혁명의 주체로서 농림부장관, 교통부장관, 9년여의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우리나라 정치계의 거물중의 한분이다. 우연한 기회에 함께 시국을 논의하는 중에 누구도 몰랐던 비화 한토막이 언급되었기에 여기에 간추려 소개를 드리고자 한다.
장경순장군이 육군본부 교육처장을 맡고 있었고, 박태준회장이 육군본부 상훈과장을 맡고 있을 때의 일화다. 당시는 각 군의 부서마다 미 고문관이 상주하면서 군사적인 지도편달과 아울러 군원예산에 대한 통제조정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육군본부 교육담당 고문관이 장경순 교육처장께 얘기한다.
“처장님 빨리 가십시다. 오늘 전체 군사고문단회의에서 예산조정에 대한 최종결정이 이루어질 듯합니다. 육군본부교육예산에 대한 총괄협의이므로 가셔야 합니다.”
라고 권유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장경순처장이 역정을 냈다.
“여보시게 고문관, 우리 같이 논의 좀 하십시다. 우리 군사원조예산이라는 것이 귀국의 1개 사단 예산이면 우리는 10개 사단이 쪼개 쓰고 푼돈을 아껴가며 쓴다. 대표적인 사례로 훈련 시 경계구분을 할 때에 비용절감 때문에 백색테이프를 쓰지 못하고 대신 새끼줄을 끊어서 구분선으로 쓸 정도로 이렇게 절약을 해서 쓰고 있다. 여기에 무엇을 통제를 한다는 얘기인가. 차라리 육군, 공군, 해군의 비중을 조정해서 육군 몇%, 공군 몇%, 해군 몇% 총량을 정해주면 그 규모 속에서 우리가 재량껏 최대한 절약해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거늘 백색테이프가 얼마냐? 새끼줄로 할 때는 얼마냐? 당신들이 어떻게 일일이 다 아는가?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그런 예산심의라면 난 갈필요가 없다. 안 가겠다"
라고 버텼다. 고문관이 당황해서
“장군 그러지 말고 갑시다. 중요합니다.”
“난 안 갈 테니까 고문관 혼자 가서 내 뜻을 좀 전해주슈.”
난감한 표정을 지은 고문관이 본부에 갔다가 얼굴이 하얗게 돼서 돌아왔다. 고문단장으로부터 되게 깨졌던 것 같다. 물론 장경순장군이 주장한 견해가 일리가 있어서 뜻은 전했으나 전체의 조율과 판단이 육군교육처 고문관의 단독 힘으로는 조절통과가 지난한 사항이라 속된말로 기합만 받은 꼴이 됐다.
그러나 그 뜻을 전달했던 것은 충분히 상달이 되고 논의가 되어서 나중에 그것이 바뀌는 모멘텀이 되었다. 고문관 개인으로서는 직위해제 되고 본국으로 귀환되는 처분을 받게 되었다. 장 장군으로서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대한민국 편을 들고 자기의 뜻을 받들어서 용전분투하다 희생된 꼴이었다.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처벌받거나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 명확했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고문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당시 일면식도 없었던 상훈과장 박태준대령을 찾아가 전후사정을 간곡하게 얘기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사지원을 위해서 분투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는데,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논의 끝에 상훈과장 박태준 대령이 서슴없이 결단을 내린다.
“좋습니다. 같이 노력합시다.”
라고 말한 뒤 즉각 결정을 하고 캐비닛을 열고 을지무공훈장 한 벌을 꺼내 전해준다.
“대신 내일 오후까지 이 사람에 대한 상훈공적서를 상세하게 기록하여 내 주셔야합니다. 장 장군을 믿고 먼저 수교합니다.”
라고 결단을 내린다. 상훈심사라는 것이 보통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인간적인 신뢰와 신속한 상황판단을 통해서 선조치 후행정보완이라는 대단히 리스크가 큰 결단을 내리는 것을 보고 ‘아하 장차 이 사람이 대단히 큰 인물이 되겠구나’ 라는 심증을 그때 굳혔다고 한다.
마침내 을지무공훈장을 들고 와서 공적서 상신을 하고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당시에 세종로에 있는 코리아리퍼블릭 사장을 찾아 전후사를 얘기하고 홍보를 부탁했다. 그 전개과정에 감동을 받았던 코리아리퍼블릭 사장이 쾌히 동참하겠다고 하며 그 날짜로 사진을 곁들여 안내광고 겸 기사해설로 전면 대서특필하였다. 미 대사관에서 전후과정을 조사하고 신문스크랩 등을 본국에 상신을 하여 당사자 고문관은 오히려 영전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수고해 마지않았던 고문관의 충정을 헤아려서 이를 구제해주려고 노력했던 장경순장군의 충정과 그 진실성을 믿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선 조치했던 박태준회장의 결단과 그 의기에 감동하여 코리아리퍼블릭 전면을 할애해 홍보와 소개를 했던 사장의 결단이 아우러져 아름다운 꽃을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장 장군의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를 거요. 우리나라 산림녹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됐는지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내가 농림부장관으로 산림청을 관장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박정희대통령과 나와 박태준 최고회의 상공위원과 함께 오찬을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벌거숭이산을 어떻게 극복을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개진하는 가운데 산림청을 강화하여 도벌이나 난벌, 가랑잎 끌고 가는 것을 엄하게 처벌하는 방안이 어떠냐는 안이 제의됐을 때 아무 얘기 않고 잠잠히 있었던 박태준씨가 거들었어요.”
“각하, 그것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하지?”
“겨울에 천하없어도 얼어 죽지 않으려면 가랑잎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가져다 때야 할텐데 아무리 말리더라도 그것을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어떡해해야 하나?”
“대안을 마련해주셔야죠.”
“대안이 뭐가 될까?”
“나무를 안 때고도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 이것은 거의 무진장으로 우리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연탄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것은 어떤 방법이 될까?”
“석탄공사를 만들어 석탄, 무연탄을 캐는데 전력을 다하도록 하고, 이것이 공급되면서 산림을 남벌하는 것을 엄하게 처벌하자면 산림청이 농림부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을 내무부로 이관시켜서 도벌을 엄벌하고 내무부령으로 다스리도록 하고 석탄을 독려해서 석탄공사가 공급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독려하고 기차배정을 하는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듣고 있던 대통령이 한 말씀한다.
“산림청이 농림부 산하인데 장 장관 이리 이관해도 괜찮겠소?”
장 장관이 선뜻 동의한다.
“박 최고위원의 얘기가 지당합니다. 미처 생각 못했던 탁견입니다. 산림청을 이관하도록 하지요.”
선뜻 이관이 되고 석탄공사가 건립이 되어 석탄을 캐면서 우리나라 난방문제가 서서히 해결이 되고, 붉은 흙덩어리였던 산이 초록색으로 바뀌어져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거창한 힘의 조절에 의해서가 아니라 준비된 한사람의 결단, 준비된 한사람의 충정에 의해서 역사의 변곡점이 전환되는 과정을 연출하게 된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역사전개의 한 토막이었기에 여기에 소개를 한다. 여러분들의 참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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